모든 영혼의 정류장, 듣기만 해도 왈칵 눈물이 나는 그 이름, 엄마
70여 장의 사진과 글로 남다
엄마라는 말처럼 많은 이야기가 담긴 단어가 있을까. ‘엄마’라는 말만큼 거대하고 보편적인 공감의 단어가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점점 자라면서 슬며시 엄마의 곁을 떠난다. 우리 삶에 가장 밀착되어 있었지만, 어느새 가슴으로부터 멀리 떠나가고 있는 존재, 엄마. 언제나 함께 있을 것이라 착각하지만, 늘 깨달음은 황망하게 찾아온다. 그런 점에서 『엄마, 사라지지 마』는 조금 특별한 포토 에세이다. 작가 한설희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후, 엄마마저 사라질까 하는 조바심에 엄마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다. 작가도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딸과 여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머니는 어떤 사진으로 남았을까. 네 아이를 품에 안고 홀로 풍랑 속을 걷는 고단한 어머니, 도시라는 공간에 정착하기 위해 이를 악무는 이주민, 자신을 떠난 남자를 한평생 기다리는 사랑받고 싶은 여인…… 그 모든 삶의 모자이크가 펼쳐내는 감동은 굉장히 묵직하고 울림이 크다. 어머니의 일상을 담은 흑백사진과 짤막한 글로 이루어진 포토 에세이 『엄마, 사라지지 마』는 잠시나마 잊고 있던 우리 안의 ‘어머니’를 강하게 환기하는 영감 넘치는 사진들로 가득하다. 독자들 가슴속에 오래도록 기억될만한 올해의 기념비적인 사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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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아들이거나 딸”
‘노모(老母)’라는 다큐멘터리 사진, 대한민국을 사로잡다
지난 봄, 서울 통의동에 있는 사진 갤러리 류가헌은 이곳을 찾은 중년의 관람객들로 붐볐다. 어떤 이들은 사진 앞에서 자리에 박힌 듯 움직이지 못했고 탄식을 내질렀으며 어떤 이들은 아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하고 말았다. 그들이 보고 있는 사진의 주인공은 작가 한설희의 ‘어머니’였다. 열흘 남짓한 짧은 기간 대중들과 만났던 이 ‘노모’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 사진은 전시회로 갈무리되기엔 그 여파가 너무 컸다. ‘노모’는 전시를 다녀간 이들을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신문과 TV에서도 이 작업을 주목했다.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이 유명 사진가도 아닌 주부 사진가의 어머니 사진에 공감하고 열광했을까.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유명 사진작가도 아닌 내 작품을 보기 위해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의 아들이거나 딸들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내가 아니라 나의 엄마, 그리고 그들 자신의 엄마였다. 주름 골이 깊고 검버섯이 핀 여자, 흐트러진 백발과 초점 없는 눈으로 침묵하는 여자, 고단한 세월이 옹이처럼 얼굴에 박힌 여자,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자…… 관람객들이 보는 것은, 모두의 엄마인 그 여자였다.”
관람객들은 작가 한설희가 찍은 ‘어머니’의 사진을 보며 모두 마음속으로 자신의 엄마를 겹쳐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 전시 때 아쉽게 빠졌던 미공개 사진들과 출간 직전까지 찍은 최근 사진을 더해 한 권의 책 『엄마, 사라지지 마』가 당도했다. 더 많은 이들과 만나기 위해, 더 많은 이들이 ‘어머니’를 만날 수 있도록 말이다.
어느새 늙고 병들어 겨울나무처럼 앙상해진 여인,
엄마의 남은 날들을 담는 딸의 카메라
늦든 빠르든 우리는 모두 언젠가 고아가 된다. 부모를 잃는다는 것은 겪어보기 전에는 감히 상상해볼 수 없는, 생각조차 하기 힘든 상실이다. 마치 내 머리 위를 받치고 있던 커다란 우산이 순식간에 거두어지고,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비와 눈을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는 것과 같다고 작가는 말한다. 카메라를 들고 엄마의 일상을 좇기 시작한 작가의 눈에 들어온 엄마의 모습은 마치 곧 바스라질 것처럼 앙상해져 있었다. 같은 모습으로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엄마가 낙엽으로 탈바꿈하듯 본연의 빛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북녘 외딴 섬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만나 뭍으로 나왔던 엄마, 이제 늙고 병들어 다시 방이라는 섬에 외로이 갇혀버렸다. ‘소멸’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예감이 찾아들자 주변의 어떤 것도 심상치 않았고, 그 무엇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작가 한설희는 2년간 매일매일 용인 자신의 집과 서울 어머니의 집을 오가며 출근하듯 사진을 찍었다. 조바심이 났다고 했다.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 엄마의 몸 상태, 이제는 눈을 뜰 기력조차 없어 누워서 잠만 자는 엄마를 볼 때마다 마음이 급했다. 엄마에게 얼마나 시간이 남아 있을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엄마를 잊지 않고 간직하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로, 『엄마, 사라지지 마』는 완성되었다.
엄마에게는 이제 얼마나 시간이 남아 있을까
93세 어머니와 69세 딸,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다
엄마의 죽음을 예감하며 셔터를 누르는 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의 방, 어머니의 물건을 뷰파인더로 다시 바라보며 작가는 곳곳에서 이별을 예감하고 몇 번이나 소스라쳤다. 정리된 옷 위로 흰 천이 있는 검고 기다란 옷장 서랍을 보며 ‘관’을 떠올리거나 나비 문양의 자개장을 향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에서 피안의 세계로 향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경험이 그것들이다. 그럴수록 작가는 왜 나는 더 일찍 엄마의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안타까워했다. 엄마가 더 건강했을 때, 엄마가 더 아름다웠을 때 사진을 찍어드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죽음에 대한 예감 없이는 찾아오지 않았으리라고 작가는 고백한다. 독자들에게, 우리의 깨달음도 너무 늦지 않기를 바라게 하는 대목이다.
두 개의 시선, 두 개의 거울, 두 명의 어머니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하는 두 사람의 삶
하지만 살아오면서 이 엄마와 딸이 알콩달콩 살뜰했던 것만은 아니다. 아이 넷을 데리고 홀로 삶의 거친 풍랑을 헤쳐나가야 했던 젊은 여인과, 어린 나이에 세상물정 모르는 엄마를 돌보며 아버지의 부재를 메워야 했던 첫딸의 가슴에 맺힌 일이 어디 한둘일까. 카메라를 들고 엄마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는 손 한 번 잡는 것도 어색했다. 방 혹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해 그 안에 갇힌 채 생활하는 한 사람을 2년간 카메라로 담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연출을 요구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딸은 엄마의 방에 유독 거울이 많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한 번도 여자이기를 포기한 적 없는 엄마를 상징하는 물건이자, 어느 순간 차갑게 금이 간 엄마의 삶을 상징하는 중요한 메타포! 그 거울을 통해 작가는 엄마의 마음속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고 말한다.
카메라를 들고 누군가에게 가까이 가는 일은 서로의 상처와 결핍에 다가서는 일이다. 엄마의 몸 일부를 클로즈업할 때마다 아물지 않은 생채기가 클로즈업 됐다. 서로 주고받은 가시 돋친 말들, 거래처럼 교환한 상처들이 낱낱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엄마와 딸은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사진을 찍는 동안 수없이 시선을 교환하고 서로를 바라본다. 이 시간을 통해 모녀는 서로의 가슴으로 닿는 길을 다시 찾는다. 독자들은 사진과 글을 따라가는 동안 긴 세월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응어리들이 풀어지고, 다시 만나 물길이 터지는 두 줄기의 강을 보게 될 것이다.
나이듦 그리고 죽음에 대한 가장 리얼한 직시(直視),
‘노모(老母)’라는 우리 삶의 가장 절박한 다큐멘터리
사람들은 젊음에 열광한다. 젊음은 곧 아름다움의 동격이요, 늙음은 오히려 추(醜)에 가깝다고 여기곤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엄마, 사라지지 마』는 정면으로 바라보기 힘든,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리얼한 직시다. 꽃처럼 아름다웠던 한 여인의 허물어진 노년 풍경, 흙으로 돌아가기 전 정물처럼 변해가는 한 인간의 나이듦을 이토록 치밀하고도 끈질기게 바라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절박함 때문일 것이다. 인간 모두가 안고 있는 ‘죽음’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느끼는 절박함. 언젠가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혈육을 잃어야 한다는 공동의 절박함이다. 사진을 찍는 딸을 두고도, 굳이 동네사진관에 가서 영정사진을 찍는 엄마. 혼자 영정사진을 찍으러 사진관까지 걸어가는 엄마를 헤아려보는 대목에서는 보는 이의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더 이상 책장을 넘길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 한설희와 그의 노모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 생각해보라.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는 비슷한 다큐멘터리를. 『엄마, 사라지지 마』는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삶에서 지금 힘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무엇이냐고,
잊히지 않게 남겨야 할 것들이 없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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